ChatGPT가 처음 나왔을 때 밤을 새워 가며 이것저것 물어봤고, "이게 진짜 미래구나" 싶어서 설레기도 했으니까요. 근데 최근 카렌 하오(Karen Hao)의 책 《Empire of AI: Dreams and Nightmares in Sam Altman's OpenAI》를 접하고 나서, 그 설렘이 서서히 불편한 질문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MIT 기계공학과 출신의 탐사 저널리스트인 그녀는 8년 넘게 AI 산업을 취재하며 OpenAI 전·현직 임직원 90여 명을 포함해 무려 250명 이상, 300회 이상의 인터뷰를 소화했습니다.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현장을 직접 밟고 쓴 기록입니다. 케냐, 콜롬비아, 칠레까지 발로 뛰며 AI 산업이 세계 곳곳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추적했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그녀가 들춰낸 AI 제국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AGI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다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꽤 당황했습니다. AGI(범용 인공지능)가 아직 명확한 과학적 정의조차 없다니까요.
하오의 설명에 따르면, '인공지능(AI)'이라는 단어 자체가 1956년 다트머스 회의에서 존 매카시(John McCarthy)가 연구비와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전략적으로 만들어낸 조어였다고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심리학, 신경학, 생물학 그 어느 분야에서도 "인간의 지능이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된 정의는 없습니다. 목적지도 모르면서 "인간만큼 똑똑한 기계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셈이죠.
더 황당한 건 OpenAI가 이 모호함을 오히려 전략적으로 써먹는다는 겁니다.
의회 앞에서는 "암을 치료하고 기후 변화와 빈곤을 해결할 구원자"
소비자 앞에서는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놀라운 디지털 비서"
마이크로소프트(투자자) 앞에서는 "수천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할 황금알"
청중에 따라 정의를 카멜레온처럼 바꾼다는 거죠. 이건 기술 이야기가 아니라 마케팅이자 정치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앙숙이 된 샘 알트만과 일론 머스크의 관계도 여기서 출발합니다. 알트만이 2015년 "AI가 인류를 멸망시킬 위협"이라고 블로그에 썼던 건, 머스크가 두려워하던 언어를 그대로 따라 해서 투자와 공동 창립을 이끌어내기 위한 계산된 심리전이었다는 겁니다. 머스크는 나중에 "조종당했다"고 느끼며 회사를 떠났고, 지금은 법적 공방이 현재진행형입니다.
진실을 말하면 숙청당한다
이 부분이 저를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구글 윤리적 AI 팀의 공동 리더였던 팀닛 게브루(Timnit Gebru) 박사가 대형 언어 모델(LLM)의 해악을 입증하는 논문을 발표하려 하자, 구글은 그녀와 동료 마가렛 미첼(Margaret Mitchell)을 해고해버렸습니다. 연구 결과가 틀려서가 아니라, 결과 자체가 불편했기 때문이죠.
카렌 하오 역시 피해자였습니다. 2019년 OpenAI 내부에 3일간 들어가 쓴 심층 프로필 기사가 2020년 출판되자, 알트만 측은 무려 3년 동안 그녀와의 모든 대화를 차단했습니다. 신작 집필을 위해 40페이지짜리 질문지를 보내며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표까지 끊은 그녀에게 일방적 취소 통보를 날렸다고 합니다.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알트만은 트위터(X)를 통해 "비참여 도서는 사실을 왜곡할 것"이라며 선제적 여론전을 펼쳤죠.
기업 방어 수준이 아닙니다. 제국이 비판적 목소리를 통제하는 방식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사회 쿠데타, 막장 드라마의 진짜 내막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2023년 샘 알트만이 갑자기 해임됐다가 며칠 만에 복귀한 그 황당한 사건.
하오의 취재에 따르면, 공동 창업자이자 수석 과학자 일리야 수츠케버(Ilya Sutskever)는 알트만이 팀들을 이간질하고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거짓말을 하며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당시 CTO였던 미라 무라티(Mira Murati)도 같은 판단 하에 독립 이사들에게 알트만의 리더십을 고발했고, 이사회 멤버 아담 디안젤로(Adam D'Angelo)는 'OpenAI 스타트업 펀드'가 사실 회사 소유가 아니라 알트만 개인 소유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파악하고 경악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사회는 그의 설득력을 두려워해 철저한 비밀 속에 기습 해고를 단행했지만, 투자자들의 반발로 알트만은 곧 복귀했습니다. 진실을 외쳤던 일리야와 미라 무라티는 회사를 떠났고, 윤리적 견제 장치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일자리를 잃으면 AI 훈련 알바를 하게 된다
클라르나(Klarna) CEO가 AI로 고객 서비스 업무의 70%를 대체하며 직원을 7,400명에서 3,000명 대로 줄인 것을 자랑스럽게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밀려난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요?
충격적이게도, 상당수가 데이터 라벨링(Data Annotation) 시장으로 흘러들어 갑니다. 뉴욕 매거진의 심층 보도에 따르면, 대학 학위를 가진 화이트칼라, 박사, 변호사, 심지어 할리우드 영화감독까지 신분을 숨긴 채 저임금 라벨링 알바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언젠가 자신들의 직업을 완전히 대체할 AI를 손수 훈련시키고 있는 셈이죠.
환경은 처참합니다. 하오가 인터뷰한 한 여성 작업자는 언제 올지 모르는 프로젝트 알림을 하루 종일 노트북 앞에서 기다려야 했고, 막상 프로젝트가 열린 순간 아이가 하교하자 극도의 불안감에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괴물이 되었다. 화장실 갈 자유조차 없다"는 그 말이 오래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AI가 인간을 단순 노동에서 해방시켜 더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줄 것"이라는 임원들의 말과, 가장 기계적인 조건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현실은 이렇게 충돌합니다.
로켓 AI의 환경 파괴, 자전거 AI가 답이다
일론 머스크가 AI 모델 '그록(Grok)'을 훈련시키기 위해 테네시주 멤피스에 구축한 슈퍼컴퓨터 시설 '콜로서스(Colossus)'. 전력을 감당하기 위해 35대의 메탄가스 터빈을 돌렸고, 이미 폐암·천식 발병률이 높았던 흑인·유색인종 밀집 지역은 매일 가스 악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텍사스 애빌린에 짓고 있는 OpenAI의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는 뉴욕 센트럴파크 면적에 100만 개의 칩을 돌리며, 뉴욕시 전체 전력의 20% 이상을 소비할 예정입니다. 지역 주민들은 전기요금 폭등과 가뭄 속 식수 경쟁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습니다.
하오는 이런 방식을 '로켓 AI'라고 부릅니다. 옆 동네 가려고 우주 발사체를 쏘는 것처럼, 막대한 자원을 낭비하는 비효율의 극치라는 뜻입니다.
반면 대안도 있습니다. 2024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딥마인드(DeepMind)의 알파폴드(AlphaFold)가 대표적입니다. 단백질 구조라는 명확한 목적에 맞게 정제된 작은 데이터만으로 신약 개발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죠. 인류의 데이터를 마구잡이로 긁어모을 필요도, 거대한 에너지를 태울 필요도 없었습니다. 하오는 이런 방식을 '자전거 AI'라고 부르며, 진정으로 필요한 기술의 방향을 이렇게 제시합니다.
우리가 써 내려가야 할 미래
카렌 하오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는 게 아닙니다.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녀의 책 《Empire of AI》는 단순한 기술 비관론이 아닙니다. "중국이 이기면 안 되니 우리에게 모든 자원과 권력을 몰아달라"는 소수 억만장자의 공포 마케팅에 속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이미 미국인의 80%가 AI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원하고 있고, 예술가·작가들은 지적재산권 도용에 맞서 소송을 제기하며 '데이터 제공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거대 데이터센터 건설을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서고 있죠.
AI가 내 직업을 빼앗고 환경을 파괴하는 괴물이 될지, 아니면 인간의 역량을 돕는 자전거 같은 도구로 남을지. 그 열쇠는 빅테크 이사회가 아니라,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다음에는 AlphaFold처럼 실제로 인류에 기여하고 있는 '자전거 AI' 사례들을 더 깊이 파헤쳐 볼 예정입니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다른 생각이 드셨거나, 경험이 있으신 분은 댓글로 편하게 남겨주세요. 저도 계속 배우는 중이니까요. 😊